한고운, 나방.

 

  연락을 받고 안양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한고운 너는 이제껏 봐왔던 익숙한 얼굴이 아닌 앳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의 그 특유의 미소는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 검은 눈으로 너는 스스로의 일생을 반추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네 앞에 나는 향을 하나 꽂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개 꽂아놓을 것을 그랬다. 그리고 술을 따라줄 것을 그랬다. 그게 너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나는 네 옆에 앉아, 너의 친구 민구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예전에 썼던 시 ‘나방’이라든가, 올해  썼던 시 ‘귀’라든가. 나는 너의 시를 참 좋아했다. 울림이 있다고 할까, 절실함이 묻어있다고 할까. 내가 쓴 글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부러워했다. 아니, 그저 좋아했다. 너의 시 나방은, 지금도 읽고 있다.

  너와의 추억, 너와의 기억. 벽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와 너의 인연은 작년 여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길다고 말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나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너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 너를 알고 있다? 웃기는 소리다. 시를 쓸 때, 나는 거의 네 옆에 앉아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너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네 옆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너를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너의 많은 친구들이 눈물을 흘렸다. 너의 죽음에 슬퍼했고, 어떤 녀석은 너무 울어서 탈진할 것만도 같았다. 너의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너를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너를 생각하는 동생이 있는데. 너는 왜 어두운 전동차로 몸을 던졌단 말이냐.

  “뭐, 그런 게 인생이고 인생이고 인생이죠, 형님.”

  “그런 건 전부 각자 취향 아니겠습니까, 형님.”

  네가 했던 시시한 말들이 귓속에 울린다.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취향은 모두 다르고, 시시한 일들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다 타버린 향이 하얗게 스러져 떨어지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민구에게 향을 꽂으라고 말하면서 너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일생을 품은 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날 새벽, 무엇을 생각했었냐. 글에 적었던, 결국 사람은 사람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 글쎄. 너라면 또 웃긴 농담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체 너는 무엇을 생각했었냐. 어떤 슬픔으로 몸을 끌어안았던 것이냐. 모르겠다. 그래서 너라는 남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특유의 미소를 지은 채로,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던 너를 떠올려본다.

  생각해보니 너는 자신이 말라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알면서도 스스로 원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시인이 되길 바랐고, 홀로 산이나 공원을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을 하는 것을 즐겼었다. 너는 하얗게 바싹 마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얗고 고운 뼛가루가 되어버린 너를 보고, 나는 그제야 네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죽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너와의 별거 아닌 대화와 이야기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나방이 제 몸 마르는 것도 모르는 채 빛에 취해 밤새 날갯짓한다고 하였다. 너의 그 말을 생각해보니, 그래. 그렇다.

  한고운, 너는 꼭 나방 같은 사내였다.




  기다려라. 이따가 한 대 갈겨줄 테니까.

by Clown | 2009/07/29 11:34 | 끄적이다 | 트랙백 | 덧글(0)

겨울바다

 

남자: 올해 겨울바다도 역시 춥군. 아아, 나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지.

여자: 올 겨울도, 매년 그랬듯 저는 그와 바다에 왔어요. 겨울이어서 그런지 춥네요.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어서 마음은 따뜻해요.

남자: 긴 머리가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어. 매년 겨울바다에 올 때 볼륨감 있게 웨이브를 넣고는 했는데, 그 모습이 한 송이 목련화처럼 청순해보이면서도 어떨 때 보면 뒷골목의 요부처럼 보이기도 했지. 후후.

여자: 머리가 아주 짧고,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를 가진 남자예요. 처음 볼 때는 그 눈매 때문에 사나운 사람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부드럽고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였죠. 주위 사람들 모두 그를 좋아해요. 그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지만 말이에요. 후후후.

남자: 그녀의 몸매는 길을 지나가던 남자들이 한 번 쯤 돌아볼 정도였지. 그런 그녀와 함께 걷는 것은 나의 즐거움 중 하나였어. 미녀와 거리를 함께 다닌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지.

여자: 그는 아주 능력 있는 남자예요. 어떤 일을 맡기든 일사천리로 해내고, 또 동료들의 신뢰도 아주 두텁죠. 전 그런 그의 연인, 아내라는 것이 정말이지 행복해요. 그런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잖아요? 저는 주위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어요.

남자: 아아, 올해 겨울바다는 정말 춥군. 작년에 왔을 때도 추웠는데 그것보다도 더 추운 것 같아. 어째서 올 때마다 점점 더 추워지는 걸까?

여자: 호호호, 올해 겨울바다는 춥지 않네요. 작년이 더 추웠던 것으로 기억해요. 정말,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는 말이 옳은 것 같죠?

남자: 내년에 올 때는 옷을 더 두껍게 입고 와야겠어.

여자: 내년에 올 때는 옷을 좀 얇게 입고 와야겠어요.

남자: 응? 그런데 왜 혼자 있냐고?

여자: 네? 그런 남자가 남편이면서 왜 혼자 있냐고요?

남자: 하하하. 그녀가 먼 여행을 떠났거든.

여자: 그는 아직 자고 있어요.

남자: 그래. 지금 바다위의 붉은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온 것처럼 순식간에 말이야.

여자: 사실 그는 잠이 많거든요. 아침에 잘 일어나질 못해요. 처음 그것을 알았을 때는 크게 놀랐죠. 아무리 깨워도 더 잘 거라며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겠어요? 후후. 남자는 다 커도 어린애라는 말을 실감했죠.

남자: 하하하. 그래.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그녀를 보고 싶어지는군.

여자: 호호호. 오늘은 그와 저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날이에요. 이런 날 같이 있지 않으면 그건 아주 크나큰 손해겠죠?

남자: 응?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여자: 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아주 소중한 날이냐고요?

남자, 여자: 오늘은

남자: 그녀와

여자: 그와

남자: 나의

여자: 저의

남자, 여자: 결혼기념일

남자: 물론이지. 오늘 같은 날 아내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가 없는걸.

여자: 물론이에요. 저도 그와 함께 지금 떠오르는 저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이가 아침에는 절대 못 일어나겠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후후후. 그런 그이가 귀여워서 내버려두고 할 수 없이 혼자 나온 거죠.

남자: 어째서 함께 할 수가 없냐고?

여자: 그래도 말이에요?

남자: 후후. 말하고 싶지 않군. 분명 말을 한다면 할수록 나라는 남자의 가슴은 괴로움을 토할 테니까.

여자: 언젠가는 그와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 그래. 평생토록 보지 못할 그리움에.

여자: 올해까지 매년 그랬듯, 내년부터 평생 함께 올 테니까요.

남자: 그래도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 다른 길로 갈라섰다고 하지.

여자: 그 어떤 것도 우릴 갈라서게 할 수 없을 거예요.

남자: 이혼? 후, 그래.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너무나도 무서운 힘에 의한……. 하하하……

여자: 그래요. 그게 설령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남자: 사실…… 그녀만 내 곁을 떠나간 것은 아니야.

여자: 후후후.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저는 한층 더 행복해요.

남자: 잘 아는군. 그래, 자식이지.

여자: 맞았어요. 후후. 역시 배가 조금 부풀어 있어서 금방 알아차리는군요. 그래요. 저는 임신 중이에요. 아직 별로 되지 않아서 성별을 알 수는 없지만 말이에요.

남자: 아들이었냐고? 아니. 아니었어. 아들은 아니었지.

여자: 둘 중에 어떤 성별이었으면 좋겠느냐고요? 호호, 글쎄요? 아들도 좋고 딸도 좋은걸요. 어떤 성별이든 그와 저의 자식인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남자: 그럼 딸이었냐고? 아니. 딸도 아니었어. 하하. 그래, 딸도 아니었지.

여자: 그래도 굳이 바란다면? 흐음.

남자: 그래……

여자: 딸이면 좋을 것 같아요. 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요. 왜인지 딸이 좋을 것 같아요.

남자: 굳이 정하자면 딸이었을 것 같군.

여자: 왜냐고요? 호호호.

남자: 왜냐고? 간단하지. 아내가 딸이기를 바랐을 것 같아서 말이야.

여자: 남편이 딸이기를 바랄 것 같아서예요.

남자: 후우! 겨울바다의 어둠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춥군. 상상하던 것 이상이야. 아무리 춥다지만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여자: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네요. 조금 쌀쌀한 걸요?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겠어요. 지금 시간이라면 아무리 아침에 약한 그이라도 깨어났을 테니까요.

남자: 응, 돌아갈 거라고? 하긴 이대로 버티고 앉아 있기엔 추운 날씨지. 그래, 잘 가게.

여자: 당신은 들어가지 않나요?

남자: 들어가지 않느냐고? 후후. 나는 들어가지 않아. 오늘 하룻밤은 이 해변에서 계속 앉아 있을 셈이지.  -57

여자: 그렇군요. 이대로 앉아 있겠다고요? 어째서요? 아, 그렇군요. 알았어요.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하지만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해요. 감기 걸리겠어요.

남자: 어째서? 후! 그거야 간단하지. 그녀가 나와 함께 일출을 보기 원했기 때문이지. 내가 아침에 약해서 말이야. 어떻게 해도 일어나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오늘 밤새 앉아 있다가 볼 생각이라네. 마지막 그 순간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노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겨울바다의 일몰을 말이야.

여자: 언젠가 그와 함께 일몰을 볼 수 있겠죠?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고 말이에요.

by Clown | 2009/05/02 18:22 | 트랙백 | 덧글(0)

카인 데 메디치



어느 글 그림 커뮤니티에 냈던 자캐.

외눈 + 외팔이 검사로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 특징

쉽게 말해 특징이 없다. 아놔.

by Clown | 2009/04/22 23:25 | 트랙백 | 덧글(0)

처음이로군요.


  하하하. 한 번 만들어보았습니다.
 물론 만들어 놓고선 몇 년후에 접속할지도 모르는 일. (네이버가 그랬으니까.)
 그럼. 활동을 제대로 할지 안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스킨 제목은 'My way를 가련다.'
 (뭐. 제가 만든 스킨은 아니지만. 단지 적용하기를 눌렀을 뿐인 스킨이지만.)
 (제목 만들지 말란 법 있습니까?)

by Clown | 2009/03/24 01:1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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