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9일
한고운, 나방.
연락을 받고 안양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한고운 너는 이제껏 봐왔던 익숙한 얼굴이 아닌 앳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의 그 특유의 미소는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 검은 눈으로 너는 스스로의 일생을 반추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네 앞에 나는 향을 하나 꽂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개 꽂아놓을 것을 그랬다. 그리고 술을 따라줄 것을 그랬다. 그게 너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나는 네 옆에 앉아, 너의 친구 민구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예전에 썼던 시 ‘나방’이라든가, 올해 썼던 시 ‘귀’라든가. 나는 너의 시를 참 좋아했다. 울림이 있다고 할까, 절실함이 묻어있다고 할까. 내가 쓴 글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부러워했다. 아니, 그저 좋아했다. 너의 시 나방은, 지금도 읽고 있다.
너와의 추억, 너와의 기억. 벽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와 너의 인연은 작년 여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길다고 말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나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너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년.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 너를 알고 있다? 웃기는 소리다. 시를 쓸 때, 나는 거의 네 옆에 앉아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너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네 옆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너를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너의 많은 친구들이 눈물을 흘렸다. 너의 죽음에 슬퍼했고, 어떤 녀석은 너무 울어서 탈진할 것만도 같았다. 너의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너를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너를 생각하는 동생이 있는데. 너는 왜 어두운 전동차로 몸을 던졌단 말이냐.
“뭐, 그런 게 인생이고 인생이고 인생이죠, 형님.”
“그런 건 전부 각자 취향 아니겠습니까, 형님.”
네가 했던 시시한 말들이 귓속에 울린다.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취향은 모두 다르고, 시시한 일들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다 타버린 향이 하얗게 스러져 떨어지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민구에게 향을 꽂으라고 말하면서 너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일생을 품은 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날 새벽, 무엇을 생각했었냐. 글에 적었던, 결국 사람은 사람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 글쎄. 너라면 또 웃긴 농담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체 너는 무엇을 생각했었냐. 어떤 슬픔으로 몸을 끌어안았던 것이냐. 모르겠다. 그래서 너라는 남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특유의 미소를 지은 채로,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던 너를 떠올려본다.
생각해보니 너는 자신이 말라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알면서도 스스로 원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시인이 되길 바랐고, 홀로 산이나 공원을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을 하는 것을 즐겼었다. 너는 하얗게 바싹 마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얗고 고운 뼛가루가 되어버린 너를 보고, 나는 그제야 네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죽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너와의 별거 아닌 대화와 이야기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나방이 제 몸 마르는 것도 모르는 채 빛에 취해 밤새 날갯짓한다고 하였다. 너의 그 말을 생각해보니, 그래. 그렇다.
한고운, 너는 꼭 나방 같은 사내였다.
기다려라. 이따가 한 대 갈겨줄 테니까.
# by | 2009/07/29 11:34 | 끄적이다 | 트랙백 | 덧글(0)




